2011년 4월 17일 일요일

파친코 파친코 파친코

파친코는 집단의 놀이이자 외로운 놀이다. 파친코기계들은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자기 기계 앞에서 혼자 게임을 즐길 뿐, 옆 사람을 팔꿈치로 건드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당신은 구슬이 구멍을 통해 핑핑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구슬을 집어넣는 속도는아주 빠르다). 파친코 영업장은 벌집이나 공장 같고 사람들도 조립라인에서 작업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교하고 흥미진진한 파친코노동현장이 다 떠오른다.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문가나 환멸을 느낀 신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서구인들이 핀볼기계 주변에 모여 한가로이 노는 연극적 방관주의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다.

게임 운영법도 일본식과 서구식이 다르다. 서구에서 파친코 일단 구슬이 돌아가고 난 후에 구슬이 바닥에 떨어질 때의 탄도를 (기계를 살짝 밀면서) 잘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파친코 처음 동작에 모든 것이 달려 있어서, 엄지손가락으로 손잡이를 잡는 힘에 모든 것이 정해진다. 즉각적이면서도 한정된 그 기민함으로 선수의 재능이 결정되며, 결국 선수는 그 첫 동작에 전부를 거는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슬의 추진력은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움직이고 관찰하는 선수의 손놀림으로 아주 미묘하게 제한(조정되는 것이 아니다)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손은 (일본식으로) 파친코예술가의 손이며 그의 (시각적) 특질은 '제어된 사건'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기계적인 수준에서 선이 단 하나의 동작으로 그려져야 하며 종이와 잉크의 특질상 결코 수정되지 못하는 일획주의(alla prima)를 재생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슬도 일단 한 번 돌아간 후에는 다른 길로 빠지지 못하고 (서구식으로 기계를 흔드는 것은 아주 상스러운 짓이다) 구슬이 갈 길은 순간적인 힘에 의해 이미 결정된다.

Bear

파친코 영양순환체계를 조직하는데 필요하다. 서구의 기계는 관통력을 상징한다. 핀볼게임에서 필요한 것은 환하게 불이 켜진 기계판에서 유혹하듯 기다리는 미녀를 정확하게 맞춰서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친코에는 성性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 (내가 지금 일본이라 부르는 이 나라에는 성적 충동이 성행위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다. 이와 반대로 미국에서는 성이 성적 충동을 제외한 모든 곳에 존재한다) 파친코 기계는 일렬로 늘어선 외양간의 여물통 같고, 선수는 너무나 재빨라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지경인 급작스러운 몸짓으로 기계에게 쇠구슬이라는 먹이를 준다. 그는 파친코거위배를 채우듯이 기계를 (쇠구슬로) 채운다. 기계는 때때로 용량이 다 차면 설사하듯 쇠구슬을 쏟아내고, 선수는 돈 몇 푼만으로도 상징적인 돈벼락을 맞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유한 자본주의의 한계성 (변비처럼 찔금찔금 나오는 월급)과는 파친코 정반대로 갑자기 홍수처럼 쏟아지는 은빛 쇠구슬을 파친코 선수의 두 손 가득히 짜릿하게 채워주는 이 게임의 진지성을 이해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